<특별기고> 임용현의 모두를 위한 노동권 이야기 : 긴축재정 핑계로 깎여 나가는 불안정노동자의 권리 보호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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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462회 작성일 23-10-18 10:36본문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전면폐지! 동료지원가 187명 전원해고! 중증장애인 노동권을 보장하라!” - 2023.9.15. 피플퍼스트서울센터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공동주최 기자회견
“24년 예산 ‘0원’ 막무가내 약정해지,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폐쇄결정 철회하라!” - 2023.9.22. 전국외국인노동지원센터와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주노동자평등연대 등 공동주최 기자회견
“24년간 여성노동자를 지켜온 고용평등상담실 폐지, 퇴행하는 고용노동부를 규탄한다!” - 2023.9.25. 전국고용평등상담실네트워크 주최 기자회견
9월 한 달간 고용노동부의 지원예산 삭감으로 일터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의 기자회견 목록이다. 노동부가 관련 사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하면서 내년부터 정부 예산이 깡그리 삭감된 것이다. 이로써 ‘사업 종료(내지는 축소)-예산 삭감-단체 폐쇄 및 종사자 해고’의 수순을 밟게 될 공산도 그만큼 커졌다.
폐쇄 위기에 내몰린 단체들 이름이 다소 생경할지도 모르겠다. 우선 이 단체들이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해 왔는지부터 하나하나 알아보자. 일명 ‘동료지원가’ 사업으로 알려진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은 중증장애인이 다른 중증장애인의 취업 활동을 돕는 자조모임과 상담 등 각종 활동을 유급으로 수행하는 일자리 연계 사업이다.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국내에 체류 중인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임금체불, 산업재해를 비롯한 노동상담, 한국어 교육 등의 사업을 진행하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고용평등상담실은 일터에서 성차별과 성희롱 피해를 겪는
여성노동자들의 고충을 상담하고 해결해 온 곳이다.
그리고 이들 단체 활동가들은 노동권이 박탈된 불안정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긴 시간 애써 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국가가 해야 할 일들을 민간위탁 등의 방법으로 대신 수행해 온 곳들을 이렇게 한꺼번에 폐쇄하려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그 내막을 알기 위해서는 정부가 해당 예산을 삭감하는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정부 예산, 알면 어디에 쓰나
정부 예산은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그에 따라 한 나라의 자원을 어떻게 동원해서 어디에 투입할지를 알려주는 지표이다. 정부가 가장 비중 있게 고려하는 사업 영역에서는 그만큼 큰돈을 몰아줄 것이다. 그래서 “예산을 보면 정부의 정책 의도를 엿볼 수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한편으로 이 말은 예산의 쓸모가 나라 경제를 운용하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나라 살림에 필요한 돈을 얼마나 거둬들이고 또 얼만큼 쓸지 결정하는 과정을 우리는 예산안 편성 및 심의라고 부른다.
한 해 예산안의 편성은 중앙정부가 하고 심의‧확정은 국회가 하게 된다.
그리고 지난 8월 29일에는 내년도 나라 살림을 위한 수입‧지출 계획표라 할 수 있는 2024년 정부 예산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편성 원칙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정부는 전 정부가 푹 빠졌던 재정만능주의를 단호히 배격하고 건전재정 기조로 확실하게 전환했다.”
한마디로 빚더미에 올라앉아 나라가 거덜 나게 생겼으니 허리띠부터 바짝 졸라매야 한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자린고비 정신이 고약한 줄은 익히 알았지만, 양반집 곳간을 터는 일이야 일가족 몫이니 대수롭게 여기지 않아도 그만이다. 반면 정부의 짠물예산은 훨씬 더 큰 규모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즉, 이는 우리 사회가 건강한 공동체로 나아갈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체질 변화에 관한 핵심 문제인 셈이다. 그 옛날 자린고비 설화 주인공의 기똥찬 절약정신이 온 식구의 배를 곯게 만들었듯 이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 때문에 누군가 헐벗고 굶주리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무튼 정부가 늘어나는 빚을 줄일 방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수입(세입)을 대폭 확충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출(세출)을 과감히 줄이는 것이다.
물론(!) 이 정부는 후자를 선택했다. 건전재정 기조는 지켜야겠고 부자 감세로 세수는 줄어들 게 빤하니 ‘작은정부’, ‘민간주도’를 표방하는 이 정부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라 하겠다.
8월 29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 예산안은 올해보다 2.8% 늘어난 656조9000억 원 규모다. 허리띠를 졸라맨다면서 총예산 규모는 오히려 늘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그런데 올해 물가상승률이 3.5%로 예측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사실상 감축예산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는 브리핑 자료를 통해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단행한
‘지출 구조조정’ 규모가 약 23조 원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24조 원에 이어 2년 연속 20조 원대 예산 구조조정이 이뤄진 것이다.
이 같은 지출 구조조정에 따라 곳곳에서 예산삭감 소식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리고 앞서 열거한 사업폐지 항목들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산삭감 후폭풍을 일으킨 부처 사례로 고용노동부만 살펴보았는데, 사실 이조차도 극히 일부 항목만 다룬 것이다.
누구를 위한 예산 삭감인가
이제 고용노동부의 ‘줄삭감’ 예산 내역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정부 예산안이 공식 발표된 8월 29일, 노동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올해보다 3.9%가 줄어든 33조6039억 원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당시 브리핑 자료를 보면 예산 삭감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사업을 원점 재검토해 재정낭비 요인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고, 특히 필요성·타당성에 대한 충분한 검증 없이
관행적으로 지원하던 예산과 불용이 과다 발생하거나 효과가 적은 사업은 지출 효율화 했다”는 게 노동부 설명이다. 노동부가 지출 효율화를 이유로 예산을 삭감한 대표적인 사업에는
국민취업지원제도와 실업급여, 두루누리 사업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로 불리는 국민취업지원제도는 취업 취약계층에 취업지원 서비스와 구직 촉진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로 2021년부터 시행됐다. 작년 47만 명으로 편성했던
국민취업지원 제도 예산은 이번에 30만8천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리고 정부가 일찌감치 제도개악을 시사한 실업급여 예산은 2023년 11조1천839억 원에서 2024년 10조9천144억으로 2천700억 원 가까이 축소된다.
심지어 이는 ‘달콤한 시럽급여’ 운운하며 실업급여 하한액을 깎으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개악안을 반영하지 못한 액수다.
10인 미만 사업장의 사업주와 노동자의 사회보험료를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업 예산도 1조764억 원에서 2천389억 깎인 8천375억 원으로 예산안을 냈다.
어디 그뿐인가. 노동단체에 대한 국고보조금 역시 전면폐지하고 사회적기업에 지원하는 보조금도 약 3천억 원에 달하는 대폭 삭감안을 내놓았다.
앞에서 보았듯 정부의 이러한 지출 구조조정은 해당 사업의 축소 또는 폐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권리의 해체’에 맞서 투쟁과 연대를
특히나 문제적인 지점은 정부가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예산을 줄줄이 삭감했다는 것이다. 여기엔 현 정부가 대놓고 혐오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단체의 보조금도 포함된다.
노동‧노동권‧노동조합의 의미를 새기고 권리를 세우는 공존과 연대의 운동을 고사시키겠다는 정부의 속내가 읽히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노동‧시민사회의 역량을 키우는 인프라 조성에 더 이상 나랏돈이 흘러가지 않도록 빗장을 단단히 채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건전재정 기조를 확실히 한다는 미명 하에 그동안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 생태계를 민간 주도, 시장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 투자와 고용을 늘리겠다는 명목으로 법인세를 대폭 인하하는 등 부자감세 정책도 이어지고 있다.
결국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넘어 ‘가진 자들만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구상이 아닐까.
정부 예산은 우리 사회가 가진 자원과 인프라를 분배하는 기능을 갖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노동자‧시민이 예산을 확정하는 과정에 뛰어들 여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민주적인 의견 수렴은커녕 투명한 정보공개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다.
이대로 정부가 정해 놓은 (퇴행의) 길을 따라 걷는 게 상책일까? 아니면 공동체를 지탱하는 필수‧공공 일자리를 지키고, 나아가 확대하는 실천의 길에 들어서야 할까?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불평등 예산은 막아내고 필수‧공공 예산은 늘리는 싸움을 이제라도 시작하자.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 고용평등상담실과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활동가들의 곁에 서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존과 연대의 길로 나아갈 담대한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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