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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존중 대상을 넘어 존엄한 주체이자 이 세계의 개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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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국민주연합 조회260회 작성일 25-02-2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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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철현(전국노동자정치협회 편집위원장)



우리는 현재 노동자를 ‘건폭’이니 ‘마피아’니 폄하하며 탄압하는 정권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투쟁으로 '대통령'을 참칭한 내란ㆍ외환 수괴가 구속되고 이제 탄핵을 앞두고 있습니다.


당장 노동자의 신새벽이 올리는 없습니다.

여전히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자본의 세상은 변치 않고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내란정권이 노조를 파괴하고 심지어 수거(학살) 계획까지 세우는 만행을 그대로 둬서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투쟁으로 노동권을 말살하고 전쟁을 일으키려는 정권을 멈추게 하고 구속시켰다는 점만으로도 커다란 성과를 거뒀습니다.

노동자들이 이 투쟁에 앞장선 것으로 노동자들과 노조가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도 성과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노동의 역사

 


우리는 단호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앞으로 그 누구라도 노동자들의 자긍심과 권리를 모욕하고 말살하려는 자가 있다면 윤석열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윤석열 이전 정권은 '노동존중'을 내걸었습니다.

자기 손으로 합의한 남북 간 선언을 미국 눈치보며 파기했던 것처럼.....

노동존중의 실상은 파견제 정리해고제 같은 악법은 그대로 두고, 산입범위로 장난치며 줬다 뺐는 역대급 최저임금 인상으로, 실질임금의 후퇴로, 비정규직 외주화의 확산으로,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로, 만연한 실업으로.....

이렇게 기만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제가 만약 "노동자들은 존중의 대상이 아닙니다"라고 하면 필시 저에게 "활동가가 할 소리냐?", "제 정신이냐" 하는 비난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노동자는 누군가로부터 존중받는 대상적 존재를 넘어서는 존엄한 주체입니다. 노동자는 이 세상의 건설자이자 개조자이고 생산과 서비스의 중심입니다.

누가 세상의 주인 보고 존중한다고 하겠습니까?

노동자는 존엄한 세상의 주인입니다.


우리의 <거짓역사서>는 세상을 이끌어온 것은 지배자, 통치자들이라 서술하고 가르칩니다. 역사물들은 <궁중암투>를 마치 우리 역사의 전부인 것 마냥 다루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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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궁중암투에 몰두하는 자들은 먹지 않는답니까?

주지육림에 빠진 양반들의 먹거리, 마실거리와 그 준비는 가난한 농민들과 하인들의 노동과 서비스로부터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누가 인류의 위대한 건축물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들었습니까?

누가 호화로운 궁궐을 지었습니까?

누가 먹거리, 입을 거리를 제공했습니까? 바로 생산자, 서비스자들입니다.


그들은 한 때 노예로 불렸고 시녀와 하인으로, 농노로, 지금은 <임금노동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노동의 역사, 생산자들의 역사입니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통해 힘을 과시하고 파업으로 생산과 서비스가 멈출 때만이 그 존재의 의미가 빛을 발합니다.


그러나 이 뒤집어진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과거엔 공돌이∙공순이로, 근로자로 취급당했습니다. 현재도 인식은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천대∙무시 당하는 것이 사실이죠.




인간은 왜 소모성 재료가 되는가?


어느 동지가 보내준 민주연합노조 영상을 보았습니다.

새벽에 깨어나 영상을 다 봤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녹색조끼 붉은 주작의 탄생"이라는 영상은 보고 또 봤습니다. 가족들과 주변에도 보라고 소개했습니다.


노동자는 "회계장부에서 인건비가 아닌 재료비에 불과하다", "쓰레기를 치우며 세상을 깨끗하게 하지만 정작 우리는 더러워진다"는 글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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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보다도 영상 배경 음악으로 넣은 황가람 씨의《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가 좋았고 담담한 목소리와 가사도 좋았습니다.



유튜브에 가서 이 노래를 들어봤습니다. 이 노래에 수천 개의 사연과 감상이 담긴 글들이 올라왔는데 그 중 한 건설노동자의 댓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 "아우…이노래 뭐냐...건설현장 점심시간 종이박스 깔아놓고 잠깐 누웠는데 이노래 듣고 어린 아이처럼 펑펑 울어버렸습니다. 아무도 없는걸 알지만 누가 볼새라 넥워머로 얼굴 전체를 가린 후에야 온몸을 떨면서 펑펑 울어봤습니다. 40 중반에 시원하게 울어본게 처음이네요. 황가람. 기억하고 응원하겠습니다." 》

 

이 댓글 아래에 또 수백개의 따뜻한 위로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 "노래하는 황가람씨도 노숙에 막노동 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오늘에 이르렇다고 하죠. 슬픈 이유는 자화상 같은 노랫말 때문일거예여. 힘내세여. 저도 늦은 나이에 사업실패 후 막노동에 힘든시간을 5년 가까이 보냈고, 그 시간에도 꿈을 잃지 않고 저녘이면 미래를 준비했어여. 지금은 그래도 막일에서는 벗어나 나름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어여. 힘내세여. 당신은 세상에 가장 소중한 존재 입니다. 몇일 후면 저는 환갑입니다. 지금도 하루하루 열심히 미래를 준비합니다. 화이팅 하세여. 꿈을 잃지 마세여." 》 


참 따뜻한 진심의 위로의 말이지만 저에겐 다음과 같은 말이 마음과 머릿 속에 걸렸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막일에서는 벗어나 나름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어여."


그런 의도는 아니겠지만, 건설노동은 비천한 일이고 가치 있는 일도 아니고 그 자체로 누군가의 꿈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러한 인식은 당연합니다.


노조가 있는 건설현장은 5시 정시퇴근이 자리잡기도 했지만 여전히 30여 년 전과 같이 휴식공간은 없습니다. 점심시간에 두꺼운 방음 단열제로 쓰는 스티로폼을 깔고 자죠. 이 조차 사치로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대부분 종이박스 깔아 놓고 현장 아무데서나 누워서 잠시 곤한 몸을 눕혀 휴식을 취합니다.

가까운데 화장실이 없는 현실도 문제고요. 게다가 중대재해는 모든 것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건설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안 좋은 것은 의식의 문제도 있지만 실제 열악한 노동 현실에 있습니다.


중층적인 하도급제는 부실공사 원인이자 누가 초고위 착취자인지 알 수 없게 만들며,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요인입니다.


그런데 건설노조 노동자들을 건폭이니 마피아니, 무법자니 하며 소탕하겠다는 자들이 권좌에 앉아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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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양회동 열사가 "죄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 라며 노동자의 자긍심을 짓밟는 정권을 타도해 달라고 자기 몸에 불을 질렀겠습니까?


그래도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자긍심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였는데 그 활동을 조직폭력배로 취급하니 얼마나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까요?


그런데 그보다 더한 게 있습니다.

양회동 열사의 분신을 동료가 방조하고 유서대필을 했다고 월간조선이 조작해 보도했습니다. 뒤이어 젊어서 노동운동을 했다고 자랑하는 국토부장관이 여기에 동조하며 맞장구를 쳤다는 사실입니다.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희대의 조작 사건이 있었는데 이 <유서조작, 분신방조 가짜뉴스>는 국가권력과 언론이 합세하여 자행한 그보다 더 사악하고 야만적인 조작 사건입니다.  (드레퓌스 사건 :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FDt5YCobc6s)


동료를 잃고 충격을 받은 노동자는 국가에 의해 얼마나 큰 상처를 받고 고통 받았을까요? 평생 잊지 못할 고통, 분노, 수치, 모욕을 느꼈을 겁니다.


그런데 저들은 노동자의 분신을 보고 어떻게 저런 무도하고 사악한 가짜뉴스 범죄를 기획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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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희대의 조작으로 드러난 강기훈 씨 유서대필 사건입니다. 1991년 5월 8일 노태우 군사독재에 맞서 연이은 분신 투신 항거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당시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연합 사회부장의 분신자살 사건에 대해 검찰이 김기설의 친구인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기소해 처벌한 조작 사건입니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https://www.youtube.com/watch?v=bTBZvkTJIgU)


조선일보와 윤석열 정권은 양회동 열사의 분신이 정권 퇴진 투쟁으로 나아갈 것을 직감하고, 자신들이 조작했던 악마와 같은 사건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노동자의 눈으로 세계를 보라. 존엄한 주체가 되기 위하여!

 

노동자가 회계장부에서 인간이 아닌 재료비가 되는 이유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노동력은 자본이 마음대로 소비할 수 있는 착취 재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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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노동자가 세상을 깨끗하게 하지만 자신은 더러워지는 것은 치열하고 자랑스러운 노동의 흔적입니다. 하지만 실은 열악한 작업환경의 문제와 근원적으로는 노동소외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생산자들과 서비스자들이 만든 노동의 결과물을 자본이나 사용자가 가로 채 가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 생산의 진짜 목표는 인간의 정신적∙물질적∙문화적 풍요와 행복이 아니라 자본의 이윤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이 피, 땀 흘린 생산과 서비스는 이윤 축적의 계기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향유 해야 하는 사회 전체의 것이 되는 것이 옳습니다.


노동자들이 생산과 서비스의 주인이 되는 사회가 오면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기업과 공장, 현장을 운영하게 됩니다.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것은 노동자는 누군가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은 노동하는 삶으로부터 지혜롭고 소박한 존재가 됩니다. 노동으로 겸손과 인내심을 배웁니다.


지식인들은 재벌에게 봉사하느냐 민중에게 봉사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존재가 달라지게 됩니다.


예전에 《성자가 된 청소부》라는 책이 있었는데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어폐가 있습니다. 청소부가 성자가 된 것이 아니라 청소부야말로 성자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은 존엄한 주체이지만 그 자체로 존엄한 주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노동자 스스로 존엄한 주체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불의에는 저항하고 억압자에게 고개 숙이지 말고 꼿꼿하게 머리를 쳐들고, 약자에게는 따뜻한 존재가 돼야 합니다.


자신의 직접적인 경제적 이해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개조자답게 사회 전체의 진보적 발전을 위해 투쟁에 나설 때 진정으로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존엄한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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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는 "테스형!"이라는 트로트 가요에서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라며 소크라테스에게 삶과 죽음의 애환과 유한성을 토로하고 지혜를 구합니다.


그러나 사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지혜와 이성과 과학에 반대하였습니다.


《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 반대자였다.

자유란 간악한 접대부가 민중을 곤드레가 되도록 취하게 만들기 위해 물을 타지 않은 술이라고 그는 말했다. 사람들은 진리와 자연의 인식과 자연을 지배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자연의 연구에 반대하여, '네 영혼을 알라'고 말했다. 마치 영혼은 자연과 세계 밖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으로 인해 소크라테스는 그의 같은 시대 사람만이 아니라 수십 세대의 사람들에게 해를 주었던 것이다." 》


그의 제자 플라톤도 마찬가지입니다.


《 "통치자는 국가를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거나 해도 상관이 없지만, 흔해 빠진 수공업자가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거나 하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만 했다. 이것이 플라톤이 말하는 '정의'였다." (《인간의 역사》 미하일 일린, 네이버 블로그 하늘 독수리) 》


이들은 오늘날 인류의 위대한 철학자로 부각되고 있지만 실은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진리로 나아가려는 인간을 막고 통치자들에게 복무했던 이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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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진정으로 이 사회를 개조하고 진보시키는 존재가 되려면

이 사회의 통치자들이 만들어 놓은 지배적 여론, 편견, 인식과 싸워야 합니다.


"골로 간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사회의 반공주의는 민중을 학살하고 저항하는 민중을 빨갱이로 만들어 탄압한 수단이었습니다. 싸우고 극복해야할 과제입니다.


노동자들이 역사의식과 계급 인식을 가지고 이 사회를 진보적으로 만들고 이끌어갈 때!

자신에게 주어진 위상에 걸맞는 노동자가 되는 것이며

진정으로 이 사회의 개조자이자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다른 주제로 찾아 뵙겠습니다.